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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로 들어서 48번 국도를 따라가면 호젓하다 못해 쓸쓸함이 느껴지는 창후리 포구가 나옵니다. 포구에 닿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지럽게 주변을 날고 있는 갈매기 떼입니다. 갈매기 떼의 모습보다 귀가 따다울 정도로 울어대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먼저라는 것이 더 정활할 것 같네요 물이 빠진 간조때엔 바닷가 갯벌위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갈매기의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방파제에 서면 검푸른 바다 넘어 교동도가 보입니다. 창후리 선척장에서는 교동도로 가는 페리를 탈수 있습니다. 교동도는 연산군과 안편대군의 유배지로 철종이 어린시절을 보낸 터가 아직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한편 창후리 포구 입구에는 황복마을이라는 커다란 푯말이 서 있는데요 민물에서 자란다는 황복을 이곳 창후리 포구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유인즉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임진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황복이 이곳 여울목을 지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창후리 포구에는 황복전문 횟집이 많이 있습니다 황복을 맛보려면 황복철을 찾 맞춰야 하지만 숭어나 다른 회감들은 언제든 싱싱하게 즐길수 있는 곳입니다


교동도

[喬桐島 ]


교동도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달을참(達乙斬), 고목근(高木根), 교동(喬桐)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달을참이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대운도(戴雲島), 고림(高林)이라고도 불렸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고도가 매우 낮은 섬으로 높이 0∼10m의 지역이 섬의 3분의 2를 이루고 있으며, 마식령산맥 서단에 해당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


연백에 면한 동북해안은 제방을 쌓아 고구(古龜)의 관개용 저수지의 완성으로 경지확장 및 경지정리를 하였다. 해안선은 단조로우며, 연안의 저지(低地)는 이질(泥質)인 갯벌로 되어 있어서 어항의 발달은 불리하고, 간만의 차도 커서 선박의 출입도 그리 편리하지 못하다. 섬인 까닭에 한서의 차는 내륙에 비하여 작으나 언제나 해풍이 비교적 강하게 불며, 겨울에는 해안의 유빙으로 한기를 더욱더 조장한다.


내륙에 비하면 겨울이 빠르고 여름이 늦어 환절기에는 해상의 기류가 고르지 않아 때때로 소나기·회오리바람을 몰아오며, 때로는 서리나 우박이 내리는 등 날씨가 고르지 못하다. 연평균기온은 11.2℃, 연강수량은 1,390㎜이다.


상고시대에 이 섬은 개화산·율두산·수정산을 중심으로 세 개의 섬으로 되어 있었으며, 교동평야에는 언제나 조수가 흘렀고, 그것이 그 뒤 하나의 섬으로 변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개화산 중턱에서 볼 수 있는 화석이 된 조개껍질이나 현 해안선에서 내륙에 위치한 패총의 흔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남쪽에 있는 석모도 상주산 사이의 바다가 육화(陸化)되어 인마가 내왕할 수 있었다가, 1578년(선조 14)경 다시 바다로 되어 간조 때 외에는 인마가 내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보아, 후빙기 이후 범세계적인 해면변동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하천의 발달도 드물고, 작은 계류가 있을 뿐이다.


참고.(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